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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CLES/COLUMN

아빠의 편지




그간, 잘 있었느냐.

화 도 없으니 궁금하구나.

여름이 빨리 왔으면 좋다.

너와 바다 길도 거닐고 싶단다.

우리 예비 며느리 화이팅이다.”

 

 

  시란, 화자의 정서를 운율이 있는 언어로 함축해서 표현한 문학이라 했다. 누구나 쓸 수 있다지만, 역시나, 아무래도 아무나 쓸 순 없는 듯하다. 나는 아직 한참은 멀었다.

 


  아빠가, 지혜에게 e-mail을 보냈다. 그 며칠 전, 가족 모두 한 자리에 있을 때, 요즘 internet를 배운다며, 전부 메일 주소를 적어오라 하셨다. 우리는 요즘은 그런 거 안 한다며 웃어넘겼지만, 이내 종이와 펜을 가져오셔서 전부, e-mail 주소를 적어 드렸다. 그 며칠 후, 지혜에게 먼저 편지가 왔다.

 


  전부 해 봐야 다섯 줄. 투박하게 쓴 안부 얘기. 말 없고, 멋없는 글이 어쩜 이렇게 성격이랑 꼭 맞을까. 하아, 근데 이건 좀 너무 잘 썼다. 약간 짠해졌고, 여운은 길었다. 내가 쓴 어떤 글이 이 보다 날 수 있을까. 심지어, 맞춤법 틀린 부분 까지도 어쩜, 성격이랑 꼭 맞을까. 가끔씩 심술궂어져 삐뚤어져버리는.

 


  나도 군대 있을 때 몇 번, 아빠의 편지를 받은 적이 있다. 어른들이 그렇듯, 시작은 굉장히 화려했으나 굉장할 만큼 뻔했던 내용이었다고만 기억한다. 다만, 글씨체만큼은 또렷하게 기억난다. 펜으로 썼는데, 획이 무척 날카로웠고 길었으나, 살짝 누워서 멋도 부렸다. 약간은 흘려 썼는데, 또 그게 멋이었다. 아빠 글씨체를 익히고 싶어서, 지금은 많이 비슷해졌다. 아직, 아빠만큼은 아니지만.

 


  아빠는 좀처럼, 말이 적다. 좀, 얘기 나누면 쉬이 피곤해한다. 화도 잘 내서, 어려운 주제는 꺼낼 생각도 않는다. 가족, 모두가. 아마, 환갑에서 오 년이 좀 지나서야 성격이 누긋해졌다. 환갑에서 오 년이라니까 너무 나이 많아 보인다. 그냥, 육십 다섯 부터.

 


  무튼, 말이 마음을 담는 그릇이라면, 그간 그렇게 성 잘 내며 투박하게 던지던 말들이 죄다, 이렇게 묵히고 묵혀서 했던 말들이었을까, 다섯줄부터 시작 된, 다섯으론 감당할 수 없는 훨씬 더 큰 부피감, 하아,

 


  “아버님께서 e-mail을 보냈어.”란 말에 전해 읽으며 읽는 동안 숨이 막혔고, 많이 따뜻해졌으며 한참이나 멍하게 있었다. 그리곤, 뜨끔해서 며칠을 혼났다. 좋은 글을 읽어서 너무 좋았다. 게다, 아빠가 아빠를 이해하게 해줘서 고마웠다. 거기다 오랜만에 본, 잘 쓴 글이라니. 올 여름엔, 지혜를 데리고 시골을 내려가야겠다. 둘이 바닷길을 걸으면, 나는 찬찬히, 뒤를 따를 생각이다.

 




Columnist HWANG SUNG KWON

Illust by WOO

savemechis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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