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장센-연출된 장면들
©리움미술관
영화의 주제를 드러내기 위해 존재하는 영화 속 모든 장면들은 감독의 치밀한 계획 아래 관객들에게 매혹적으로 다가가기를 시도한다. 이 하나하나의 연출된 장면들이 관객들을 향한 은밀한 속임수 행위로 보이지 않기 위해 가상의 내용이지만 실제의 것들을 사용한다. 그러므로 무의식적으로 관객들은 카메라의 움직임에 따라 영화 속 장면을 인식하려 한다. 그렇다고해서 시각적 매체들의 발달과 다각화 측면이 장면연출의 이해들 돕는 역할을 대신해 온 것은 아니었다.
영화 속 장면연출, 즉 미장센의 의미가 리움미술관에서 열리는 <미장센-연출된 장면들>전에 참여한 국내외 작가들의 현대미술 작품을 통해 드러났다. 영화와 관객 사이 그들의 중간개입적 역할은 이곳을 방문한 이들에게 영화 연출 요소들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며 해석해보는 기회를 마련해주었다. 대화나 편집 없이 영상이 만들어내는 작품분위기의 톤만으로도 감동적인 하나의 장면이 완성된다는 점이 미장센에 대해 재인식하도록 만들었다. 대중영화가 안겨주는 친근함에서 벗어나 영화 같지 않은 모습으로 구성된 작품들이 제시한 미스테리를 풀어나가는 점이 매우 흥미로운 전시라고 볼 수 있다.
캐나다 출신의 아다드 하나의 '/////1초의 절반/////'은 김기영 감독의 영화 '하녀'(1960) 속 피아노 방을 모델로 한 세트 무대 안에 있는 남녀의 긴장된 장면을 12개의 모니터로 보여주는 설치영상 작품이다. 마지막 화면 자체가 영화 세트임을 드러내는 새로운 구성을 시도하였고, 마치 하나의 스틸 사진처럼 주어진 시간 안에 연출된 공간에서 미동치 않고 연기하는 배우들의 모습은 신선한 느낌을 주었다.
정연두의 사진 작품은 이번 전시 주제를 가장 일차원적으로 접근하였지만, 표현력에 있어선 가장 월등한 작품이 아니었나 싶다. 유명한 영화 장면들을 허구로 재구성함으로써 레이어를 겹겹이 쌓아 연출한 정면의 모습과 실제 촬영상황을 보여주는 측면을 배치해 다큐멘터리적인 기록을 그대로 담아냈다. 이 밖에도 작가가 제작한 모형세트와 움직이는 카메라가 포착한 화면이 하나의 작품을 이룬 진기종의 '미장센', 7개의 스크린에 담은 흑백영상으로 한 여름 밤의 풍경을 담은 중국 출신 양푸동의 '다섯 번째 밤' 등 다양한 작품을 만나볼 수 있었다.
10분 간격으로 반복 상영하는 이브 수스만의 '루퍼스 코퍼레이션'은 스페인의 화가 벨라스케스의 <시녀들>을 영화로 재현해 이 장면의 앞뒤 상황을 작가가 자신만의 해석을 보태어 동영상으로 재연해낸 작품이다. 미술사가들의 논쟁의 대상이 되었던 그림인 만큼 작가의 풍부한 상상력을 기대해도 좋을 법한 작품이었다. 작품 본연의 분위기를 잃지 않으면서 관람자가 마치 궁중의 일원이 된 듯한 효과를 발휘하여 기대 그 이상의 감동을 전달해주었다. 인과관계를 이끄는 대화의 구성이 역부족하거나 장면연출이 어색하다 느끼면 한치의 양보도 없이 작품의 완성도를 비판하는 사고적 판단이 갑자기 회의적으로 느껴지기도 했다. 영화의 줄거리를 이끌어가기 위한 대화, 즉 언어의 역할을 잠시 비워두고 보니 인물들의 감정과 분위기에 더욱 집중할 수 있는 새로운 내러티브가 생긴다는 점을 알 수 있었다.
영화적 연출로 현대미술을 보여준 이번 전시를 통해 마련된 사진과 영상, 설치 작품은 전반적으로 생동감이 넘쳐났다. 다만, 미장센의 새로운 의미를 찾는데 이외의 부분, 개개의 작품들이 맺는 유기적인 관계의 의미를 모색하고자 했다면, '연출된 장면들'이 한데 모인 이 장소에서는 모호하게 드러났다는 점에서 아쉬운 부분이었다. 4월 18일, 리움강당에서는 정연두 작가의 Artist Talk을 포함한 2차 강연회가 마련되어 있다. 미장센에 대한 심층적인 내용을 좀더 관찰해보고 싶다면, 사전 신청을 해보아도 좋을 법하다.
Official Website: http://leeum.samsungfoundation.org/
Hyangrin Mu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