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DER YOUR SOUND # 6
ARTIST
LEE ARI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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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분하고 꾸밈없는 목소리로 따뜻한 위로를 건네는 듯 그녀의 음악은 마치 초가을 저녁 부는 바람과 닮았다. 아직까지 ‘원조 홍대 여신’이라는 칭호가 낯설다는 그녀는 음악, 그림, 글쓰기 등 다양한 분야를 경계 없이 드나드는 욕심 많은 아티스트다. 그녀의 음색만큼이나 솔직 담백한 인터뷰를 시작한다.
이아립은 여러 가지를 많이 하는 욕심 많은 아티스트란 생각이 든다.
이아립: 성격이 선을 그어놓고 이름을 새기고 이런 것들을 굉장히 싫어한다.
그룹 ‘스웨터’에서 활동했을 당시 답답한 느낌도 많았겠다.
이아립: 보통 음악 하시는 분들 순서를 보면 고등학교 때 스쿨밴드를 하다가 대학교에 가서 이 밴드 저 밴드 전전하면서 자신만의 밴드를 만드는 경우가 보통인데, 나 같은 경우 첫 밴드가 스웨터라는 밴드였다. 다양한 밴드 활동을 했다면 조금 더 완성도 있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은 있지만, 스웨터의 음악과 팀의 분위기가 너무 좋았기 때문에 답답한 느낌 없이 오래가지 않았나 싶다.
잡지 싱클레어(Sinclair)는 어떻게 참여하게 되었는가
이아립: 싱클레어 발행인 피터는 어렸을 때부터 유일한 이성 친구였다. 어렸을 때부터 서로 워낙 끄적거리고 그리는 것들을 좋아하다 보니 그러한 공통 교집합이 지금의 싱클레어가 되었다. 아직도 뜬구름 잡는 소리 같은 잡지다.
정말 다양한 분야에 대해 욕심이 많다. 그 중 음악에 특별히 무게를 둔 이유는 무엇인가
이아립: 사실은 이것저것하고 있다가 음악에만 집중해야지, 라고 다짐했던 때가 작년이었다. 예전에는 음악으로 표현이 전부 되지 못해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며 채우는 느낌들이 있었다. 하지만 이젠 비워 놓는 것이 좋고 굳이 표현하고자 하는 것들을 다 드러내지 않아도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마음의 여유들이 생겼나 보다. 슬퍼서 우는 것이 아니라 울다 보니 슬퍼지는 것처럼 분주함이 사라지기보단 그러면서 오는 여유가 생기더라. 그러면서 하나에 집중하게 되고 음악에 집중하게 되었다.
직접 세운 레이블 ‘열두 폭 병풍’의 의미가 궁금하다.
이아립: 할머니께서 병풍을 만드시는 분이셨다. 어렸을 때 할머니께서 병풍을 집에 쫙 깔아놓고 한 땀, 한 땀 뜨셨던 기억이 난다. 병풍이 검정 비단이었는데 그 위에 아름다운 비단 실로 수놓아지는 꽃들이 너무나 아름다웠고 그 이미지들이 항상 머릿속에 박혀있었다. 커서 레이블을 하려고 하다 보니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에게 어떠한 공간 속 가장 아름다운 배경이 무엇일까.’ 굉장히 유명한 작가의 그림일 수도 있고 포스터일 수도 있고 조각일 수도 있는데 내가 생각한 가장 아름다운 배경은 병풍이었다. 또한, 열두 폭 병풍은 열두 폭이기에 정말 넓은 공간을 차지하기도 하고 굉장히 화려하고 아름다운 배경이 그만한 것이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나서지도 않고 바람막이도 되면서 한없이 휴식을 취할 수 있는 당신의 일상 속 배경 같은 음악. 그러한 음악을 했으면 좋겠다 싶어서 ‘열두 폭 병풍’이라는 이름과 의미를 달았다.
총 3개의 앨범이 나왔다. 앨범마다 첫 번째 병풍, 두 번째 병풍 등의 이름을 붙였는데, 그 이후 열세 번째 앨범이 나오게 된다면 타이틀은 어떻게 되는가?
이아립: 그때 직접 가봐야 알 것 같다. 열두 폭 병풍이 다 못 채워질 수도 있고 새로운 병풍이 세워질 수도 있다.
첫 번째와 두 번째 병풍 같은 경우 앨범이 하나의 작품집과도 같았는데 이후 세 번째 병풍 앨범은 그 틀이 바뀌었다.
이아립: 첫 번째와 두 번째 병풍 같은 경우는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했다. 굉장히 여러 가지 패키지를 묶어서 가격이 비싸기도 했지만, 단순히 음반이라는 생각을 버리고 일반 레코드 가게가 아닌 서점에서 팔았다. 하지만 결국 나를 소비하시는 분들은 음악 청취자셨고, 그래서 그분들께 가장 충실할 수 있는 음반에 대해 고민하다가 세 번째 병풍이 나오게 되었다.
홈 레코딩을 추구하는 이유가 궁금하다.
이아립: 음악 하시는 분들은 대부분 녹음을 굉장히 까다롭게 하는 경우가 많다. 그 진공의 공간에서 모든 것들을 완벽하게 만들어 놓고 조용하게 한 음씩 따면서 하는데 나는 그러한 것들에 반발감도 있고 ‘뭘 그렇게 음악을 하나’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공원이나 카페 같은 공간에서도 제약 없이 녹음하다 보니 그러한 거친 느낌들이 마음에 들었다. 그렇게 작업한 앨범이 1, 2집 첫 번째 병풍과 두 번째 병풍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음악을 들어보면 또 하나의 ‘소리’가 음악과 함께 어우러져 있다.
이아립: 나 같은 경우 소리가 담긴 또 하나의 앨범을 만들고 싶다. 어떤 앨범에는 빗소리, 눈 내리는 소리만 담겨있었으면 좋겠고, ‘불면증’이라는 타이틀로 코 고는 소리만 들어 있는 앨범도 만들어 보고 싶다. 평소 소리 같은 것들을 채집하는 것도 좋아하고 그러한 소리를 들으면서 스스로 안정을 느낀다. 앞서 말했듯 소리만 오롯이 담는 그런 음악도 있었으면 좋겠는데 그냥 욕심에 함께 버무려봤다. 음악 자체가 악기도 적고 편성도 없다 보니 하나의 효과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집어넣어 봤다. 깔끔한 음악 듣기를 원하시는 분들한테는 굉장히 거슬리는 음악일 수도 있을 것 같다.
영화 버스, 정류장(2001作, 감독 이미연)과 북극의 연인들(2008作, 훌리오 메뎀) OST에도 참여했었는데 그러한 몽환적인 분위기의 음악들이 참 이아립의 목소리와 잘 어우러진다는 느낌을 받았다. 심지어 영화보다 OST가 더 사랑받기도 했다. 영화음악에도 관심이 많은 편인가
이아립: ‘버스정류장’과 ‘북극의 연인들’ OST는 모두 유명 작곡가분들이 주신 곡이었다. 그 동안 내가 만든 노래들만 부르다 곡을 잘 쓰시는 분들의 음악을 불러 보게 되어 굉장히 좋은 경험이었다. ‘노래 부르기가 이렇게 쉽구나. 내 노래를 어렵게 부르게 한 건 바로 나였구나’란 생각이 들었다. 최근에는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이신 故 이소선 여사의 삶을 담은 다큐멘터리 '어머니' OST에 참여했다. 이번 작업도 무척 의미 있고 즐거운 작업이었다. 어쨌든 음악 하는 사람들에게 영화음악이란 정말 꿈 같은 작업이다.
마이언트메리나 알렉스 등 타 가수들의 앨범작업에도 참여했었다. 보통 곡을 먼저 만들고 추천을 하는 편인가
이아립: 아주 소극적이고 비즈니스를 못한다. 그걸 잘하는 사람들은 여우처럼 잘하는데 나는 전자이기 때문에 요청을 받는 편이다.
늘 조용한 음악만을 할 것 같았는데, 이호석 씨와 전혀 다른 색깔의 프로젝트 듀오 ‘하와이’를 결성했다.
이아립: 첫 번째, 두 번째, 세 번째 병풍을 하면서 언제나 꿈이 누군가를 만나서 팀을 하는 것이었다. 기타를 치는 소년 그리고 싱어송라이터. 자기 곡을 쓰는 소년과 팀을 하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했다. 우연히 호석씨 공연을 보고 마음에 들어 바로 전화를 걸었다. 그런 경험이 처음이었고 어디서 그런 용기가 생기게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원래 호석씨 앨범이 먼저 나왔어야 하는 상황인데 그 팀이 갑자기 해체되어서 하와이라는 앨범이 먼저 나오게 되었다.
어떠한 점에 이끌려 그러한 용기를 냈는가
이아립: 호석씨를 선택한 이유 중 하나가 유머라는 부분이었다. 난 사람들에게 우스운 사람이 되고 싶고 우습게 보이고 싶은 그런 꿈이 있다. 말만 하면 진지해지고 사람들이 어색하게 생각하는 그런 것들에 있어서 호석씨를 만나며 코믹 연기와 코믹 멘트가 많이 늘었다. 하하. 사람들에게 웃음을 줄 수 있는 사람이 아주 조금은 된 것 같다. 목소리가 워낙 서글프고 청승맞고 음악도 좀 그렇고. 목소리의 타고난 운명을 나도 따라가야겠다는 생각이 들다 보니 병풍작업을 하게 되었고 그 작업에 새로운 에너지가 필요했던 것 같은데 그 에너지가 호석씨였던 것 같다.
하와이라는 이름은 어떻게 짓게 되었나.
이아립: 수박을 비롯한 다양한 과일 이름부터 여러 가지 이름을 거치다가 하와이라는 이름이 둘 다 동시에 입에서 튀어나왔다. ‘어느 나라 가고 싶어?’ ‘하와이!’ 이렇게 된 거다. 가장 가고 싶은 나라를 물었는데 하와이가 툭 튀어나오자마자 ‘하와이’를 적고 옆에 ‘티켓 두 장 주세요.’를 덧붙여 팀을 하게 되었다.
하와이 앨범은 서로 각자 작업했다고 들었다. 하지만 앨범을 전체적으로 들으면 각자 따로 작업했다고는 느껴지
지 않을 정도로 곡들이 어우러진다.
이아립: 호석씨를 봤을 때 그런 느낌이어서 끌렸나 보다. 나랑 주파수가 비슷하고 굳이 묻지 않아도 웃기겠구나. 우리가 작사 작곡을 번갈아 하지 않아도 같이 섞일 수 있겠구나 하는 느낌이랄까. 호석씨 보고 좋았던 것 중 하나가 우리가 같은 앨범을 만들었을 때 어떤 느낌일까? 하고 물음표를 찍었는데 그 물음표를 찍는 기분이 굉장히 설레고 좋았다.
혼자서 결정하기 때문에 힘든 점도 많을 것 같다.
이아립: 힘들고 그만큼 재미있다. 혼자 활동하고 레이블도 혼자 하는 이유는 하고 싶은 스케줄만 하고 싶어서였다. 모든 걸 스스로 결정할 수 있고 내가 움직인 만큼 수익이 들어오기 때문에 나가고 들어오는 것들도 투명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모든 것들이 재미있다. 정말 ‘아립’이다. 나를 세우는.
즉흥적인 점도 많을 것 같다.
이아립: 무척 즉흥적이다. 굉장히. 난 몰랐는데 호석씨가 나를 보며 ‘이런 사람 처음 보네.’라며 깜짝 놀랬다.
공연을 할 때 지향하는 공간이 있다면
이아립: 울림이 좋은 공간도 좋고 오신 분들과 정확하게 소통하는 느낌의 공간도 좋다. 공간만 따진다면 새벽달빛 아래 잔디가 있는 곳? 어쨌든 공연을 보러 와주시는 분들이 계신 공간이면 어디든 하고 싶다. 아. 부엌에서도 해보고 싶다
10월 10일 10시 등 숫자에 맞춰서 일관성 있게 공연하는 것도 참 독특했다. 특별한 이유가 있는가
이아립: 자폐다. 집착이랄까. 숫자에 집착하는 편이다. 시계를 보면 12:34, 4:44, 2:22 등 우연히 중복된 숫자들이 보이는데 그러한 숫자에 집착하는 편이다. 한편으론 ‘아. 10월 10일 10시?’라고 기억하기 좋도록. 나처럼 숫자에 집착하는 사람들이 주변에 많이 있더라. 그런 사람들과 소통하기 위해 만드는 또 다른 장치다.
가장 늦은 공연시간이 궁금하다.
이아립: 11월 11일 11시였다. 12시는 못해서 12월 12일 1+2 즉 세시에 했다. 12월 12일 12시는 그 다음 날로 넘어가니 의미가 없더라.
가장 애착을 두는 곡이 있다면.
이아립: 앨범을 만들고 나서 내 음악을 집중해서 듣지를 않아 잘 모르겠다. 하지만 무대에서 공연하며 좋은 곡이 있는 것 같다. ‘이름 없는 거리 이름 없는 우리’란 곡은 관객들과 대화하지 않아도 공감하는 느낌이 들어서 좋다.
네 번째 병풍은 언제 나올 예정인가
이아립: 올해 나올 것 같다. 지금 녹음하고 만들고 그런 시기다.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하다
이아립: 지금 만들고 있는 네 번째 병풍 작업에 집중하는 것. 요즘 나라 이름, 수도 이름, 그 나라의 역사 같은 것들도 함께 공부하고 있다. 여행을 가지 않으니 머릿속으로 여행을 가보는 거다. ‘이 나라는 왜 국기에 문장이 있지? 어떤 역사를 가지고 있길래 문장을 품었을까.’ 무언가 내게 와 닿을 수 있는 부분을 찾고 있다. 가사들의 실마리를 찾기 위한 노력이다.
오늘 음악에서 느껴지는 이미지들과는 사뭇 다른 모습의 이아립과 마주하게 되어 너무나 즐거운 인터뷰였다. 하고자 하는 모든 것들이 음악으로 소통되는 느낌이 든다. 네 번째 병풍을 비롯한 앞으로의 새로운 활동들을 기대해 보겠다.
이아립 - '이름없는 거리 이름없는 우리' 10.08.22@ club AUTEUR
하와이 - '저 남자가 내꺼였으면' 11.08.05 @ club AUTEU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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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 Ha Yejin
@sodazin
Photo by Oh Seb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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